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마스 복음서 (문단 편집) == 저술 연대와 역사적 예수 == >1991년 크로산{{{-2 (J. D. Crossan)}}}과 마이어{{{-2 (J.P. Meier)}}}는 토마 복음의 역사적 가치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크로산은 토마 복음서 말씀들 가운데 일부는 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았다. 62년 야고보 사도의 죽음 뒤 토마 사도가 에데사로 갔으며 거기서 60-70년대에 만든 토마 복음 일차 자료에다 이차 자료를 추가했다고 주장한다.[* (책 속 주석)Crossan, ''The Historical Jesus: The Life of a Mediterranean Jewish Peasant''. 427-428.] 이처럼 크로산이 토마 복음의 친저성을 옹호한 반면, 마이어는 토마 복음을 2세기 영지주의 작품으로 결론 내렸다. 토마 복음에 담긴 예수님 말슴들은 신비주의·금욕주의·범신론·다신론의 렌즈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토마 복음이 공관 복음서에 의존하므로 역사의 예수님 구에 독자적 사료가 되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책 속 주석)Meier, ''A Marginal Jew: Rethinking the Historical Jesus'', 126-127.139.] 라이트{{{-2 (N.T. Wright)}}}와 알리슨{{{-2 (D.C. Allision)}}}도[* (책 속 주석)Wright, ''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1: 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435-443; Allison, ''Jesus of Nazareth: Millenarian Prophet'')}}}] 토마 복음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역사적 자료로는 가치가 없다고 보았다. >페터슨{{{-2 (S.J. Patterson)}}}은 토마 복음이 공관 복음서보다 먼저 생겨났다는 주장에는 반대하지만 이 복음서의 몇몇 말씀들은 역사의 예수님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토마 복음서에서 묵시주의적 말씀들을 걸러내고 예수님을 지혜의 스승으로 그리는 말씀들을 선별하였다. 이 지혜의 말씀들이 역사의 예수님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책 속 주석)Patterson, ''The God of Jesus: The Historical Jesus and the Search for Meaning'', 22-23.] >카에스틀리{{{-2 (J.-D. Kaestli)}}}는 크로산과 마이어 둘 다 비판한다. 마이어에 대해서는 그가 토마 복음의 영지주의적 특성을 과장하여 너무 후대 작품으로 미뤘다고 비판하였다. 토마 복음에서 발견되는 영지주의 흔적은 후대 편집의 산물이지만 그 골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크로산의 경우 자기 취향에 의해 예수님을 현자의 모습으로만 부각시켰다고 비판하였다.[* (책 속 주석)카에스틀리는 토마 복음서도 공관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전승과 편집의 결과물이며 초기 전승과 이차 전승을 모두 담고 있다면서 각 토막 말씀을 개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하였다. 토마 복음을 영지주의로 일반화해서는 안 되며 그 안에 역사적 가치가 있는 말씀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Kaestli, “L'utilisation de l'Évangile de Thomas dans la recherche actuelle sur les paroles de Jésus”, 373-395.] >유럽 학자들 중에도[* (발췌자 주석)유럽 학자들은 북미 학자들{{{-2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 세미나]] 계통의 북미 학자들)}}}보다 토마스 복음서의 사료적 가치를 낮게 본다. [[예수 세미나]]는 현대의 역사적 예수 연구의 통설{{{-2 ("예수는 종말론적인 유다인 예언자")}}}에 반대하여 예수의 희랍 철학적 요소를 강조하는 소수설을 미는 경향이 강한데, 위에서 소개된 John D. Crossan과 Stephen J. Patterson이 예수 세미나의 중요한 학자들이다. 예수 세미나는 기본적으로 소수 학파이긴 하지만 유럽에선 특히나 세력이 더 떨어진다. 심지어 독일 성서학자 Gred Theißen은 북미의 예수 연구 분위기를 (예수 세미나를 겨냥하여) 비꼬아 '''"캘리포니아의 예수"'''라는 명언을 남겼다.{{{-2 Gerd Theissen & Annette Merz, 《역사적 예수》, 43)}}}] 토마 복음이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본 이들이 있다.[* (책 속 주석)Nordsieck, ''Das Thomas-Evangelium''; Zöckler, ''Jesu Lehren im Thomasevangelium''.] 죄클러{{{-2 (T. Zöckler)}}}는 쾨스터-패터슨-크로산의 노선을 유지하면서 토마 복음에서 두 단계의 편집층을 구분하였다. 곧 토마 복음에는 예수님 활동 당시에 유래한 초기의 독자적 말씀들과 후대에 추가된 말씀들이 한데 얽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슈뢰더{{{-2 (J. Schröter)}}}와 드코닉{{{-2 (A.D. DeConick}}}은, 토마 복음이 나온 시점을 2세기 경으로 잡는다. 토마 복음은, 예수님 전승에서 전기적 요소를 제거하고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만 중점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배경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것이다.[* (책 속 주석)Schröter, ''Erinnerung an Jesu Worte: Studien zur Rezeption der Logienüberlieferung in Markus, Q und Thomas''; DeConick, ''Recovering the Original Gospel of Thomas: A History of the Gospel and its Growth''.] 결국 역사의 예수님과 그리스도교 기원을 재구성하는 데는 토마 복음이 별로 유용하지 않으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토마 복음을 역사의 예수 연구 자료로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일은 아직도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토마 복음이 초기의 독자적 예수님 전승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 학자들이 토마 복음에서 초기 말씀을 골라내어 그 진정성을 입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토마 복음의 1세기 기원설을 부정하면서 예수님에 관한 증거 자료로서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토마 복음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든 안 하든 실제로는 토마 복음을 역사의 예수님 연구에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토마 복음이 성경 연구에 도움이 되고 실제 예수님 말씀과 관련된 내용을 담았을 가능성은 있으나 역사의 예수님을 재구성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책 속 주석)Becker, ''Jesus of Nazareth''; Stanton, ''The Gospels and Jesus''; Broadhead, "The Thomas-Jesus Connection", 2059-2080. 패터슨은 여전히 토마 복음이 역사의 예수 연구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비평적 분석법을 제대로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Patterson, "The Gospel of Thomas and the Historical Jesus", 233-249.] >---- >-송혜경 박사[* 한국 가톨릭의 평신도 성서학자. 로마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와 고대 근동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서 시나이의 아나스타시우스의 작품 『시편 6편에 관한 강론』의 콥트어 비평본을 만들고 번역·주석하여 고대 근동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발췌한 책인 《신약 외경 1》에는 토마스 복음서 콥트어 비평본의 한국어 번역이 실려있다.] 역주, 《신약 외경 1》, 한님성서연구소, 2021, 144-147쪽. >토마 복음서 콥트어 사본{{{-2 (나그 함마디 Codex II)}}}이 4세기 것으로 추정되므로 그 대본은 4세기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스어 사본{{{-2 (P. Oxy. 654)}}}이 2세기 말-3세기 초의 것이니 최초 본문은 2세기 말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 토마 복음의 최종 편집 시기는 2세기 중엽이 유력하다. 핵심 내용은 1세기 중후반에 만들어졌으며 예수님의 실제 말씀들을 담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본문에서 드러나는 헤르메스주의나 영지주의 관점은 2세기 초반 이전 것으로 보기 어렵다. 더구나 네 복음서와 병행하는 말슴들에서 디아테사론 류의 조화 복음서와 비슷한 특성이 나타나는데, 조화 복음서가 발전한 시기는 2세기 중반 이후다. 따라서 토마 복음이 현재 모습으로 편집된 것도 2세기 중반 이후일 것이다.[* (책 속 주석) Wood, "The New Testament Gospels and the Gospel of Thomas: A New Direction", 595. 공관 복음서 구절들응 융합·조합하는 것은 조화 복음서 디아테사론의 두드러진 특성이다.] 결국 토마 복음의 일부 말슴들은 1세기에 형성되었고 예수님에게서 유래한 말씀일 가능성은 있으나 2세기 중반 다른 복음서 전승들과 헤르메스주의나 신비주의, 금욕주의, 영지주의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추가되어 현재 모습으로 가닥을 잡고 편집되었을 것이다. >---- >-송혜경, 같은 책 167쪽. >'''Im Gegensatz dazu geht die Mehrheit der deutschen Exegetinnen und Exegeten von der literarischen Abhängigkeit des EvThom von den synoptischen Evangelien aus und datiert es dementsprechend spät.''' >'''대부분의 독일 주석가들은 토마스 복음서가 공관 복음서에 의존한다고 생각하며 그 작성 시기를 비교적 늦은 시기로 추정한다.''' >---- >-Silke Petersen, ''[[https://scholar.google.com/scholar?hl=ko&as_sdt=0%2C5&q=Adolf+J%C3%BClicher+und+die+Parabeln+des+Thomasevangeliums&btnG=#d=gs_qabs&t=1665573199007&u=%23p%3DozCuyu7oiPgJ|Adolf Jülicher und die Parabeln des Thomasevangeliums]]'', 184. 사도시대보다 좀 더 후기에 쓰인 자료들의 특징이나 신학적 관점[* 예수시대때 유행했던 종말론적 테마 대신 그 이후에 정립된 현실주의적 관점이 들어간 점, 신을 구원의 주체가 아니라 객관적인 심판의 주체로 보려 한다는 점, 영혼과 육신의 이분법적 관점을 강조한다는 점] 을 보이고 있어서 토마스 복음서가 완전한 어록 전승일 가능성은 낮다. 게다가 발굴된 건 콥트어 번역본이라 이미 변개가 가해진 것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토마스 복음서는 어록 전승을 온전히 보존하진 못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토마스 복음서의 의의는 초기 전승시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시대에 [[그리스도교]]와는 다른 관점으로 예수를 해석하는 부류가 있었다는데 있다. 통설[* 대체로 토마스 복음서의 사료적 가치를 올려치는 학자들은 Crossan 등 [[예수 세미나]] 계열의 북미 학자들이며, 북미 학계에 한정하더라도 Crossan 등의 견해는 통설이라 할 수 없다. 북미를 벗어나서 유럽 학계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이 소수설은 더더욱 지지를 못 받는다. 위에서 인용한 Petersen의 발언이 유럽 학계의 분위기를 대변한다.]에 의하면 토마스 복음서는 기존 복음서의 어록 부분만 짜집기하여 만든 것이며 2세기 중반의 책이다.토마스 복음서가 공관 복음서 구절에 의존한다는 것과 비유의 비정상성이 정상적으로 교정된 것[* 예수의 비유는 후대의 저서일수록 저자들이 비유의 비정상성을 인지하여 정상적으로 고쳐놓는다.] 등을 근거로 한다. 또한 [[영지주의]]적[* 주의를 주자면 영지주의는 하나의 독립적 종교 운동이 아니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영지'교'의 교리를 찾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영지주의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지식 또는 인식{{{-2 (Gnosis)}}}을 구원의 필수 요소로 보고 영적인 것만 추구하며 세상과 인간 실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허무주의적 사상들을 일괄해서 영지주의라 부른다."(송혜경, 같은 책 171쪽)]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도 문제인데, 1세기 복음서들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는 종말론적 유다인 예언자로 나타나기 때문에, 희랍 철학의 냄새가 너무나 진한 영지주의적 책인 토마스 복음서의 연대를 1세기로 잡는 것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반면 John D. Crossan은 토마스 복음서의 사료적 가치를 상당히 올려잡는데, 오늘날 크로산의 입장은 성서학적 통설과 거리가 꽤 멀다. (위 송혜경 역주 발췌문 참고)] Richard Valantasis에 의하면 학자들은 토마스복음의 연대를 토마스복음이 원본 말씀으로부터 저술되었는지, [[콥트어]]나 [[그리스어|희랍어]] 텍스트 혹은 다른 저자의 텍스트로부터 저술되었는지 등의 여부에 따라 성립시기가 빠르면 서기 40년이나 늦으면 서기 140년으로 추정한다. Robert E. Van Voorst에 의하면 전기설은 50~100년, 후기설은 2세기를 지지한다.[* Jesus Outside the New Testament: An Introduction to the Ancient Evidence (2000)] Valantasis는 토마스복음이 서기 30~60년대전기자료의 일부를 참고하여 서기 100-110년대에 성립하는 것으로 추정하며 J. R. Porter는 서기 250년으로 추정한다. 바트 어만은 토마스복음이 종말론 테마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톰 라이트는 토마스복음이 전기 기독교인들의 세계관과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후기설을 지지한다. 토마스 복음서의 원문에 대해서는 희랍어로 기술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통설이지만, 소수설로는 시리아어설이 있다. Nicholas Perrin이 시리아어설을 주장하는 학자인데, Perrin에 의하면 토마스 복음은 2세기 말에 기록된 문학적 단일체이며[* 따라서 이 경우 "최종 편집은 2세기에 있었을지 몰라도 최초의 편집층은 1세기에 있었을 것이다"라는 희망사항까지 완전히 의미없어진다.] 개별 구절들이 여러 표제어{{{-2 (catchword)}}}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단, 이 긴밀한 연결은 시리아어 원문을 상정할 경우에만 드러나므로, 토마스 복음서의 원문은 희랍어가 아닌 시리아어라는 것이다.[* Perrin, ''Thomas and Tatia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ospel of Thomas" and the "Diatessaron"'', 184-19; "Thomas: The Fifth Gospel?", 78-79.] Craig A. Evans는 Perrin의 의견에 찬동하여 이 학설에 합류하였다.[* Evans, ''Fabricating Jesus: How Modern Scholars Distort the Gospels'']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